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의 화진포 해수욕장에 가면 광개토대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섬이 하나 있다. 믿을 수 없지만 소문만큼은 사실이다. 드넓은 만주를 호령했던 위대한 군주의 능이 남한과 북한의 경계지점에 있다. 누구나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것이다. 믿을 수 없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다. 믿지 못한다는 이 이야기도 사실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광개도태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섬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섬의 이름은 “금구도(金龜島)”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해변이나 해안가에 절경이 많다. 해변이나 호수가 아름답다고 하는 경우는 몇 가지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해안이나 호수는 수시로 물이 파도를 일으키고 오랜 세월의 경과는 결국 자연의 이치대로 흙을 쓸어버리고 바위면을 나타나게 한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해변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바위와 관련된 것으로 제주도의 해안처럼 물빛이 쪽빛이거나 아니면 해안가에 기암절벽이 솟아 있는 경우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좋은 산, 좋은 혈, 좋은 경관은 바위가 서 있거나 바닷물이 후려치는 절경이 아니다.
화진포 해변은 그런 아름다운 해변이 아니다. 바위조차 보이지 않는 그저 평범한 해변이며, 눈을 잡는 것이라고는 조금 떨어진 앞바다에 금구도라는 섬이 하나 있을 뿐이다. 물론 금구도에 바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근의 해안가 어떤 섬이나 바위보다 뛰어나지 않는 평범한 정도다. 바위가 없음에도 화진포 해변은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해안의 아름다운 곡선도 그 한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소나무도 한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다위에 떠 흔들리는 듯 보이는 금구도를 무시할 수 없다.
금구도는 전설이 있다. 바로 고구려의 영웅 광개토대왕의 묘라는 설이다. 구구한 이론은 많을 수 있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귀가 솔깃해지는 일이다. 사실이라면 놀라울 정도가 아니라 까무러칠 정도다.
광개토대왕은 우리민족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위대한 군주의 이름이다. 아니,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강한 고구려를 키웠던 인물의 이름이다. 단순하게 일개 왕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다. 고구려를 극동의 강대국으로 키워 중국과 당당히 맞서게 했던 민족의 영웅이다. 2007년 현재, 2000년부터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며 북한을 복속하려는 긍극의 목적을 위해 국제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동북공정을 전개하며 역사를 비틀어도 광개토대왕은 분명 우리 민족의 영웅이며 그가 지배했던 고구려는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임에 분명하다. 오죽하면 중국이 최고의 고문헌으로 받드는 [사기] [위지동이전]만 보아도 고구려는 동이족이 세운 국가이며 중국과 겨루었던 민족이다 라고 씌여있다. 어설프게 역사를 날조하는 중국이 아무리 우기고 왜곡하여도 광개토대왕비라는 역사적 실체는 부인할 수 없다.
광개토 대왕비의 일부를 살펴본다. “고구려의 제19대 왕으로서 본명은 담덕이며, 17세에 왕위에 즉위하였음. 영락이라는 연호를 최초로 사용하였으며 한강 이북에서 만주까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음. 생존시의 칭호는 영락대왕이었으며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었음.”
우리는 지금도 광개토대왕이 우리의 조상임을 의심하지 않고 자부심을 갖고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 개발 건조한 최초의 구축함 이름도 바로 “광개토대왕함”이다. 그러나 그의 능은 소재 미상인 상태다. 다만 그의 아들 장수왕이 서기 414년에 세운 광개토대왕비가 만주에서 발견되었다. 만주에 세워진 이 비문에는 백제와 신라, 왜 등 한민족과 그 주변국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새겨져 있기에 중국의 외침은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비문은 발견되었지만 그의 능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만일 그의 능이 발견되고 그 유물들이 우리 민족의 문화와 밀접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중국인들의 도발적인 행위는 강풍 앞의 먼지처럼 사리지고 말 것이다.
금구도는 해수욕장의 끝머리에서 바다 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림처럼 아름답게 앉아 있는 섬이다. 불과 몇백미터의 거리에 불과하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당장 건너가고 싶은 섬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금구도는 거북이가 머리를 바다로 향한 채 바짝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는데 섬의 면적은 약 1000평 정도다. 기이한 것은 거북이의 몸퉁으로 보이는 곳은 바위를 바닥에 깔고 흙으로 뒤덮여 있지만 거북의 머리는 완벽하게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거북이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달리 보면 육지쪽에 해당하는 몸통은 바다의 영향이 적어 흙이 남아있지만 바다를 향한 머리쪽은 바다가 심술을 부리듯 밀려오는 파도의 영향으로 뼈대인 돌만 남은 형상이다. 그래서 모습이 더욱 거북이를 닮았다.
예전 초도리 사람들은 거북의 머리가 하필이면 바다를 향해 있어서 마을에 부자가 없다며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예로부터 거북은 영물로 취급되었다. 천년을 살며 부귀영화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바다에 빠지면 거북이가 살려준다고 믿었다. 거북은 영물이기에 바닷사람이 신봉하는 동물이기도 했다. 초도리 사람들은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다가 죽으면 이 섬에서 장례를 거행했다고 한다. 단순하게 장례를 치르는 이상의 무엇인가가 이 섬에는 있다. 이 섬이 명당자리라는 이야기다.
정말 이 섬에 관개토대왕이 묻혔을까? 장수왕의 묘는 만주에 있는데, 그의 부친인 광개토대왕의 묘가 회진포 부근에 있을까? 고구려 연대기에는 서기 394년 8월경에 화진포 앞바다의 거북섬에 왕릉을 축조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광개토대왕 18년에는 왕이 직접 수릉 축조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장수왕 2년(서기 414년)에 화진포 거북섬에 대왕의 시신을 안치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기록은 정확하게 고증된 바는 없다.
아직까지 금구도에서 고구려와 관련된 유물이 발굴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금구도의 정상에는 성을 쌓은 흔적이 있다고 한다. 산정부근에서 와편과 주초석의 잔해가 발견되었는데, 혹자는 이를 사당의 일부라고 추정하고 있다. 앞으로 고성군에서는 관련 문헌 기록을 토대로 금구도 일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원형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만일 고성군의 희망대로 금구도가 광개토대왕의 능으로 최종 확인된다면 한국 고대사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 하나가 등장하는 셈이다. 그리되면 금구도와 화진포 일대는 한국 사학계의 일대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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