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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극락암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2-15 조회수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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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극락암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교동리 280번지에 있다. 극락암은 외부에서 전연 보이지 않는다. 만약 입구에 간판이 없다면 찾기는 불가하다.

속초에서 진부령 방향으로 진입한다면 고성군 소재지가 있는 간성읍에서 대대리 검문소방향으로 달려 진부령 방향 46번 국도를 이용한다. 2km정도 간 다음 우측에 있는 이정표를 따라 마을 안길로 300m 진입하면 작은 산구릉을 넘고 그 속에 6채의 당우로 나뉘어진 극락암을 만날 수 있다.
진부령을 넘어서 고성 방향으로 이동하며 찾아간다면 진부령을 넘어 장신리를 지나 2차선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좌측으로 간성 향교가 나타난다. 이 향교럴 지나치면 좌측에 간판이 보이고, 간판을 따라 300여미터를 전진하여 고개를 넘으면 된다.
마을 안길부터 이어지는 산모퉁이 숲길을 지나면 뜻밖에도 어머니 품속 같은 아담하고 정겨운 사찰이 노송 숲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을 지날 때도 절의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감이 주렁주렁 열릴 것 같은 감나무가 있고 정성을 들여 잘 자란 잔디가 소담스럽기만 하다. 극락암은 포근한 터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으로 옮겨온 것은 근래의 일이라 한다. 당우들을 보아도 그 면면을 알 수 있다. 예전 극락암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로 건봉사에서 서북쪽으로 2km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945년(고려 혜종 2) 묘적동에 창건한 이래 1878년 산불로 인해 건봉사와 함께 소실되었으나 다음 해에 중건하였고, 일제 때까지 산신 각 1칸을 포함하여 총 49칸의 규모를 갖추었었는데, 이는 건봉사와 산내 암자 5개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5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함께 생활하는 수행처이자, 멀리서 유학 와 봉명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의 기숙사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예전 극락암은 대웅전 뒤 서북쪽 능선 넘어 1km 지점에 터만 남아있으며 현재는 민통선 안이라 출입이 불가능하다.
예전에는 건봉사에서 암자까지 우마차가 다닐 정도의 길이 있었으나, 해방 후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정상적인 종교 활동이 불가능하자 극락암 비구니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엇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암자가 파괴되자 극락암에 살았던 비구니 법선스님이 1956년 간성면 관산3리에 극락암을 신축하였다가, 1962년 현재의 간성읍 교동리 280번지 함박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의 극락암이 되었다고 한다.

노송길을 따라 내려오면 항아리 같은 둥근 터 안에 좌측으로는 주차장이, 우측 축대 위로는 전각들과 탑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다.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부도 및 공덕비가 있고, 중앙에는 대웅전이, 그 좌측에 극락전이 있고 극락전 맞은편에 요사가 있다. 대웅전 우측에는 창고가 있는데, 그 사이 길로 올라가면 좌측에 우물 형태의 용왕각이 있고, 정면 축대 위로는 삼성각이 있다. 경내 안마당에는 대웅전을 기준으로 좌측에 7층 석탑이 우측에 는 나무가 세워져 있어 자연스러운 균형감을 자아낸다.

대웅전은 공간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마치 소가 누운 것처럼 둘러쳐진 형국에서 복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뒤로 돌아가 보면 기맥 하나가 길게 뻗어나와 강한 기맥을 보여주고 있어 기도처와 주불전의 위상이 드높다.
또 한 곳, 눈에 뜨이는 것은 창고다. 창고는 입구쪽에 자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입지적으로는 대웅전의 자리와 더불어 이곳 절터의 핵심적인 자리이다. 이곳에 관음전 지장전을 모시는 것이 타당하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라면 사찰에 이르는 길이다. 사찰의 부지 앞으로는 논이 있고 멀리 산이 감아주고 있어 좋은 교쇄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사찰을 보았지만 이처럼 교쇄가 좋은
곳은 거의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사찰에 이르는 진입로를 청룡과 백호 사이의 좁은 계곡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백호 지각을 약간 파고 만들었다. 깊이 기맥을 자르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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