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 산 61-1번지에 있다. 흔히 바람이 많이 불어 학사평(鶴死坪), 혹은 학사평(鶴沙坪)이라고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말은 이곳에 내려 앉은 학이 바람에 날아온 모래에 머리를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인데 사실이라고 믿을 정도로 바람에 센 곳이다.
사찰은 대부분 조용한 산 속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고 있다. 화암사는 그 어느곳에 위치한 사찰보다 뛰어난 풍광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더욱이 안산에 해당하는 산자락의 구릉위에 떡 하니 자리 잡아 듬직한 위용을 뽐내는 바위는 참으로 멋지다.
가장 먼저 눈길을 주게 되는 것이 좌측으로 보이는 수바위다. 사실 이 바위가 수바위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저 감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구멍에서 쌀이 나왔다는 전설 때문에 사찰의 이름마저 ‘화암(禾巖)’이라 했을 만큼 이 바위는 화암사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물 이다. 수바위를 지나 마주치게 되는 부도밭은 규모가 커서 자못 고개가 숙여진다. 이 공간에는 춘담대법사(春潭大法師)의 비를 비롯하여, 화곡(華谷), 영담(影潭), 원봉(圓峯), 청암(淸巖) 스님 등의 부도 15기가 모셔져 있어, 이를 통해 화암사의 위용과 오랜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정도의 부도탑은 대찰의 면모로 보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석종형(石鐘形) 부도가 가장 많으며 대부분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해 경내에는 새로운 전각들이 들어서 있는 반면, 초입의 이끼 낀 부도에는 사찰의 옛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계곡 건너편으로 대가람이 펼쳐진다. 계곡 위를 지나는 금강교를 건너면 가람이 이층으로 펼쳐져 있다. 1층에는 찻집 란야원과 요사인 아미타전, 화장실 등이 있고, 높다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잔디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마당이 있으며 정면에 대웅전이, 그 좌측에 명부전과 종무소가 있다. 종무소 맞은편 경치 좋은 곳에는 종각이 세워져 있다. 또 대웅전 뒤편으로는 삼성각과 요사가 있다.
화암사 주불전인 대웅전으로 1919년 7월에 완공한 것이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장방형으로 정면 어간을 협간에 비해 크게 간살이 했다. 불단을 바라보고 좌측벽 신중단에는 1994년에 조성한 신중탱이 걸려 있고 그 좌측에는 1992년에 제작한 청동 반자가 봉안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배치의 묘이이다. 아마도 풍수법에 따른다면 기맥을 따라 위치를 정하기 쉬웠으므로 지금의 위치보다 정면에서 보아 약간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른쪽 지각 끝으로 옮겨가면 명부전 사이에서 만나는 계곡의 영향을 받는다. 계곡풍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병을 주고 때로는 돌이키기 어려운 죽음에 이르게 한다. 현재의 배치는 매우 유용하다. 더구나 대웅전의 뒤는 마치 사람이 손을 뻗듯 작은 지각이 나와있다. 안타까운 것은 명부전의 배치다. 대웅전을 향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의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명부전이 있다.지장보살의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하는데,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유는 대웅전과의 사이에 작은 계곡이 있어 계곡풍이 건물에 닿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측면으로 불어치기 때문에 영향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화암사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안산의 배치에 어울리는 수바위다. 수바위는 1만2천봉 중 백두대간의 맨 남쪽 첫 봉우리로 유명하다. 그 옆의 울산바위는 1만2천봉에서 제외되었다. 화암사 남쪽 300m 지점에 위치한 수바위는 화암사 창건자인 진표율사를 비롯한 이 절의 역대스님들이 수도장으로 사용해 왔던 곳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수바위는 계란 모양의 바위 위에 왕관 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이 바위 윗면에 길이 1m,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다. 이 웅덩이에는 물이 항상 고여 있어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수바위 이름의 “수”자를 수(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수(秀)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전설에 위하면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이 항상 시주를 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암사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 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라고 말하였다. 잠에서 깬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꿈을 생각하며 노인이 시킨 대로 했더니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편안히 불도(佛道)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한 객승(客僧)이 화암사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객승은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 흔들었다. 그러나 쌀이 나와야 할 구멍에서는 쌀은 고사하고 엉뚱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객승의 욕심에 산신(山神)이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화암사가 벼 화(禾)자에 바위 암(巖)자를 쓰게 된 것도 이 전설에 연유한다는 이야기다. 수바위는 아들을 점지 해 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신혼부부들의 중요한 참배처이기도 하다. 지극히 기맥을 중시하는 행위이며 이는 막연한 종교적 의식 뿐 아니라 풍수적인 요점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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