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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권규와 경안궁주의 묘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3-07 조회수 514
첨부파일
내용
* 찾아가기

여주군 점동면 덕평리


* 개요

권규1393(태조 2)∼1421(세종 3)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할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희(僖)며, 아버지는 찬성(贊成) 근(近)이며 용비어천가를 지은 권제의 아우다. 1404년(태종 4)태종의 3녀이며 태종비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의 소생인 경안공주(慶安公主)와 결혼하여 길천군(吉川君)에 봉해지고, 1407년 호분위상호군(虎賁衛上護軍)을 거쳐 이듬해 겸우군도총제(兼右軍都摠制)가 되었다. 1413년 명나라 성조(成祖)의 동정을 탐문하기 위하여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여칭(呂稱)과 함께 명나라에 갔다 돌아왔다.
1416년 길창군(吉昌君)으로 개봉(改封)되고, 1418년에 의용위절제사(義勇衛節制使)가 되었다. 1421년 29세에 죽자 3일 동안 조회를 중지하였다. 품성이 온후하고 매우 겸손하였다.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 주안점

묘역을 살펴보면 애매하기 그지없다. 지나치게 깊이 판 흔적도 있으나 입수룡에서 살피면 좌우대칭이 맞지 않는 편산으로 보이기도 하고 입수가 좌우대칭이 맞지 않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입수의 좌우 대칭은 우선 방향에 다른 묘역이 자리 잡아 입수룡을 약간 팠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이치에 따라 입수룡을 살피면 그다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권규의 묘역은 좌우로 팽창된 듯 보이는 유혈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당판이 드러나지 않아 무해지지에 가깝다. 권균의 묘역 좌우측으로 가는 지각이 나타나 보이는데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으나 그 형상은 뚜렷하다. 이와 같은 경우 유혈상에 맺히는 귀성인지, 혹은 선익이 발달한 연익이거나 지각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파악에 따라 정확하게 혈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묘하에 자리한 공주의 묘역에 대한 판단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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