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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국수가락을 널어놓은 듯 보이는 비파산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3-29 조회수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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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남양은 마을뒤에 비파산을 두고 있다.
비파산을 사이에 두고 양쪽 골짜기에서 냇물이 흘러내린다. 다른 마을보다 골짜기와 시내가 많다고 하여 골계라고 불렀다. 지금은 울릉도에서 가장 따뜻한 남쪽이란 뜻으로 남양이라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가장 빨리 녹는다.
남양에서 돗보이는 절경은 단연 비파산이다. 국수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비파산은 남양리 마을 뒤편에 위치, 암석의 주상절리현상으로 산 한쪽면이 국수를 말리는 모양 또는 비파모양을 하고 있다.

옛날 우산국의 왕녀 풍미녀가 딸 하나를 남기고 죽자 우해왕은 사랑하는 왕비의 죽음을 슬퍼하여 뒷산에 병풍을 치고 대마도에서 데려온 열두 시녀에게 매일 비파를 뜯게 하여 백일제사를 지내서 비파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산의 모양은 정면에서 보아 목형산이나 산의 측면으로 돌아가면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다. 주상절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전형적인 치마바위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풍수는 시각적인 평가가 강한 학문이다. 마을에서 보면 목형산이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는 귀한 사람이 많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측면에서 보면 치마바위의 형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정도의 음행이 일어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마을 앞은 조약돌로 이루어진 남양 몽돌해수욕장이다. 울릉도 특유의 몽돌 해수욕장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기에 적당한 장소다. 따라서 여름 피서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해면연장 1km, 수심1~3m이다.

마을을 벗어나 북면 방향으로 향하면 마을 끝에는 사자바위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왕은 강릉군주 이사부를 보내어 우산국 토벌길에 올랐다. 신라군은 군선의 뱃머리에 목사자를 싣고 목사자로부터 일제히 불을 뿜으며 이 짐승을 풀어 섬사람을 몰살시키겠다고 하자 우산국의 우해왕은 투구를 벗고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했다. 우산국은 멸망했지만 전설은 남아 있으니 그때의 목사자가 사자바위로, 우해왕이 벗어 놓은 투구가 지금의 투구봉이 되었다 한다. 울릉도에서도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사자바위는 사방으로 둘쭉 날쭉 그 모양이 자못 화려하지만 울릉도의 다른 섬들에 비교해서는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다. 이러한 바위는 접근할 때와 멀어질 때의 느낌이 다른데, 다가가면 지나치게 질감이 느껴지는 날카로운 바위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바위는 감상하기는 좋으며 가까이 집을 지으면 바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바위는 각각 다른 기를 전달하는데 부드러운 바위는 좋은 기를, 날카로운 바위는 살기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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