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를 찾아서

  • 관산일정
  • 관산기
  • 포토갤러리
  • 관산자료실

관산기

제목 천고의 명당에 자리한 남매탑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4-12 조회수 616
첨부파일
내용
동학사로 들어서기 전에 만나는 홍살문. 홍살문 앞에는 작은 계곡이 있고 이곳에서 길이 갈라진다. 홍살문을 지나 직진하면 동학사이고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산으로 오르면 남매탑으로 오르는 길이다.

동학사 북쪽으로 1.8km 쯤 오르면 나란히 서있는 2기의 탑이 있다. 홍살문 앞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너덜바위가 깔린 길이다. 계룡산이라 하면 돌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남매탑으로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다. 불과 1.8킬로미터의 거리이지만 1시간 이상을 올라야 한다.

산 능선상에 두개의 탑이 세워져 있다. 식수는 계명정사 샘에서 마련할 수 있다.
두개의 탑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작은 산의 정상에 우뚝 솟아 있다. 흔히 오뉘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남매탑으로 알려진 탑이다. 보물 제1284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량사지(淸凉寺沚)의 5층석탑과 보물 제1285호로 지정되어 있는 7층석탑이다.
계룡산 삼불봉 아래 동쪽 8부능선, 해발 약 590m의 등산로 옆에 있는 이 탑의 사지는 근처에[청량사淸凉寺]라는 막새기와가 발견되어 청량사지라고 부르고 있다. 청량사는 임진왜란때 병화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고, 이 탑만 남게 되었다. 1950년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남매탑이라는 이름이 심상하지 않듯 전설이 전하고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상원조사(上原祖師)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도를 닦고 있었다.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목이 아픈 시늉을 하여 보니 목에 비녀가 하나 걸려 있었다. 손을 목에 집어넣어 비녀를 뽑아주고 사람을 잔인하게 잡아먹지 말라고 꾸짖었더니 호랑이는 이제 살았다는 듯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사라졌다. 다음날 호랑이가 또 나타나 이번에는 정신을 잃은 처녀를 물어다 놓고 사라졌다. 승려는 처녀를 방으로 옮겨 정성을 다하여 치료해 주었다.

며칠 뒤 깨어난 처녀는 경북 상주에 사는 김화공의 딸로 다음날 혼인을 하기로 되었는데 호랑이에게 물려오던 날 밤 뒷간에 갔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깨어보니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마침 한겨울이라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처녀는 승려와 함께 겨울을 나게 되었는데 이것도 인연이니 부부의 연을 맺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나 승려는 흔들리지 않고 함께 수도에 정진하자고 거절하였다.

봄이 되어 본가로 돌아간 처녀는 부모에게 승려와 의남매를 맺고 한평생 불도를 닦겠다고 하고 다시 암자로 돌아왔다. 처녀의 부모는 감복하여 암자 자리에 청량사라는 절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상원조사의 제자 회의화상이 두 개의 불탑을 세워 그 뜻을 기렸고, 사람들이 그 탑을 오누이탑이라고 불렀다.

호랑이가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승려를 위하여 처녀를 데려와 은혜를 갚으려 한 앞부분과 승려의 간호로 목숨을 구한 처녀가 스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하여 불도에 정진하였다는 뒷이야기는 두 개의 중첩된 보은담 구조를 이룬다. 이것은 승려의 불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은의 내용이 육신의 구제를 넘어 불교적인 깨달음을 향하고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가까운 곳에 상원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상원암은 옛날에는 청량사라고 불리워졌으며, 현재 비구니스님이 참선, 정진하는 도량이다. 현재는 겨우 2개의 당우로 이루어진 작은 사찰이다. 사찰의 위치는 산바람이 올려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며, 앞쪽에 비보를 위한 나무를 심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는 남매탑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겠지만 풍수적으로는 남매탑이 위치한 곳 자체가 중요하다. 현재의 남매탑이 자리한 곳은 혈판의 윗부분이다. 즉 음택으로서의 명당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불교의 문화는 한국 전래의 풍습과 문화와 융합되어 그 다양한 형상을 드러낸다. 특히 불가에서 음택의 명당은 주로 고승의 부도터나 탑의 터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남매탑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특히 혈판이 이루어지면 바위는 강한 기의 증거로 보아 한 단계 높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남매탑이 자리하고 있는 혈처는 형상적으로 완벽한 혈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삼면에 바위가 받치고 있어 그 기맥의 강함을 살필 수 있다.

혈판이 이루어진 후에야 주변의 사격을 살필 일이다. 주변을 살피면 그 심상함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