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된 운수암은 양성면 방신리 85번지에 있다. 절 자체가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모양이다. 절을 구성하고 있는 당우나 부처. 혹은 석물이 문화재인 겨우는 적지 않으나 절 자체가 문화재인 경우는 흔하지 않다.
백운산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무한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다. 일부 자료에는 설수암이라 적혀 있는데 왜 그런 이름이 붙어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운수암은 백운산의 무량성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달리 부르기는 운적암이라고도 하는데, 법당 1동 외에 요사채(饒舍寨)가 있을뿐 작은 규모의 암자로 예전의 유지(遺址)도 보이지 않는다.
창건주인 장씨 부인이 1750년(영조26)에 비로전과 요사채를 건축하고 비로전(毘盧展)에는 상단탱화, 중단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와 중앙 상단에는 청동금불 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하고 대웅전이라 하였으나, 1899년에 불상은 도난당하고 서운산 계곡에 버려져 있던 현 비로자나불을 70명의 운수암 신도들이 운반하여 보수하고 비로전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비로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인데, 내부에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봉안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이 중건하고 운수암이라는 친필로 쓴 현판이 현존하고 있다.
운수암은 청상 과부가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갈 생각으로 무한성 바깥에다가 터를 닦았는데 꿈에 성안에다가 절을 지으라는 계시(啓示)를 받고 성안으로 가서 쓰러진 풀과 소나무를 치우고 보니, 사찰 터로 적합하여 그 자리에 암자(庵子)를 지었다는 전설(傳說)이 전해 오고 있다. 현재 10m×4.4m의 대웅전과 9.2m×2.4m와 14m×4m의 요사채 2동 도합 26칸 규모의 익공집이 남아 있고 5층 석탑이 최근 건립하였다.
사찰 터는 매우 좋은 곳에 속한다. 비록 높은 곳이라 바람이 느껴지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국쇄가 매우 뛰어나다 앞쪽에 솟아오른 금형산이 뛰어난 곳이라 절터이기는 하지만 재물이 모이는 곳이다.
눈여겨 볼 것은 운수암 비로자나불좌상이다. 운수암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비로자나불좌상으로서 약 60년 전 다른 곳에서 옮겨와 이곳에 안치한 것이다. 화강암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파손된 부분이 있기는 하나 백분을 칠하여 많이 감추어져 있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비로자나불좌상은 나발(螺髮)에 육계가 작고, 회칠을 한 상호는 원만한 편이며 백호(白毫)가 있다. 어깨는 당당하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서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이 위에서 감싸고 있는 지권인(智拳印)의 수인을 하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팔을 걸쳐 무릎을 덮었고, 의문은 뚜렷하며 결가부좌하고 있다. 화강암 대좌인 연화대를 가지고 있는데,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을 갖춘 전형적인 연화대좌로 상대석에는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불신 전체 높이는 109㎝, 두고는 37㎝, 두폭은 25㎝, 어깨폭 52㎝, 무릎폭 80㎝이다.
또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요사체다. 요사체는 사찰로 들어가는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은 뒤쪽을 시멘트로 지어 놓았지만 애초의 모습은 도투마리 집이다. 지붕의 모양이 H자로 보이는 이 집의 형태는 예로부터 가난과 관련이 있으며 때로는 사람이 죽기도 한다. 그런데 간혹 사찰을 둘러보면 도투마리 집의 형태를 가진 경우가 적지 않다. 이곳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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