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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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맥을 따라 쓴 이성군 묘역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6-20 조회수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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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된 이성군의 묘역을 찾으려고 여러 곳을 뒤지고 오락가락 하다가 겨우 마을 분의 도움을 찾아 이성군의 묘역을 찾을 수 있었다. 최영장군의 묘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건너편에 경혜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들어가 왼쪽으로 첫 번째 산자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이성군의 묘역과 그 일가의 묘역이 있다.

아주 많은 묘역이 있는데 이성군의 묘역은 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이성군의 봉분을 중심으로 배(配) 곤산군부인 남평문씨와 계배 풍산군부인 안동 권씨의 봉분이 좌우에 있다. 3기의 봉분앞에는 묘비가 서 있으며 봉분의 총 둘레는 17m이다.

묘역의 석물로는 묘 앞 중앙에 상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등이 각기 배치되어 있다. 명종 11년(1556)에 세운 대리석의 묘비는 "왕자이성군 증시장 평공 지묘(王子利城君 贈諡章平公之墓)"라 쓰여져 있는데 장방형의 비좌에 정교하게 조각된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문은 정사룡이 짓고 송인이 글씨를 썼으며 한경우가 전자를 썼다. 현재 비의 규모는 높이 170cm, 폭 65cm, 두께 15cm이다.

이성군 관은 조선 제9대 성종의 아홉째 아들로서 성종 20년(1489)에 출생하여 명종 7년(1552)에 돌아갔다. 자는 공숙이며 어머니는 숙용 심씨이다. 연산군 3년(1497)에 이성군에 봉해지고 문소전, 연은전, 종부시, 사옹원등의 도제조를 역임하였다. 명종 즉위년 (1545)에 위사원종공신 1등이 되었다. 그림에도 매우 뛰어나 인종 원년(1545) 선왕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 이를 주관하였다. 시호는 장평(章平)이다.

산은 산 자체로 살펴야 한다. 양택지와 달리 음택으로서의 산은 바로 혈을 찾는 작업이며 기맥을 찾는 일이다. 이 기맥의 흐름을 파악하고 뭉쳐있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지사가 할 일이고 음택을 찾는 요령이다.

이성군의 묘역은 가장 큰 약점이 있다. 입수룡이 약하다는 것이다. 지각이 강하며 움직임이 있어야 혈을 결지시키기에 용이하다. 이성군 묘의 약점은 입수룡이 약하다. 그러나 현재 이성군의 묘역은 혈상은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인작으로 인해 깊이 파이고 훼손되어 그 형상을 잃었다. 인작으로 너무 깊이 파고 형상을 깨트리면 묘가 아래로 처지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수맥에 걸릴 수도 있다.

이성군 묘는 물론이고 묘하의 묘역은 하나같이 쌍분이다. 기맥을 따라 묘역을 잘 조성하였지만 두개의 봉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기맥을 놓치는 안타까움을 범하고 있다. 옛 어른들의 묘역이 대부분 이처럼 두개의 봉분으로 만들어 기맥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성군의 묘역에도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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