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高陽)이라는 명칭은 고양군 내에 고봉산과 덕양산이라는 두 개의 명산(明山)이 있어 군의 이름을 지을 때 이 두 산의 이름 중 고봉산에서 <높을 고(高)>자를, 덕양산에서 <볕 양(陽)>자를 따서 고양군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양군의 군수가 지금의 고양동에 관사를 짓고 머물러 있어 <고양의 중심지>라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 바로 고양동이다.
향교는 대부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자료 69호로 지정된 고양향교(高陽鄕校)는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306번지에 있으며 중남미문화원 박물관 바로 옆이다. 고양동에서 최영장군묘가 있는 대장동 대자골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마을이면 향교가 있다. 국가적인 시책으로 이지어진 시설이다.
고양향교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때 처음 지었으며, 이후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명륜당, 전사청, 외삼문은 1984년에 새로 만들었고, 그 외 건물들은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고 한다.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사 공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앞쪽에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으며,뒤쪽에는 대성전과 동무·서무, 전사청이 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전사청은 서무 뒤쪽에 자리하며 지금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교관이 머물던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특히 향교는 풍수적 배치가 돗보인다. 대부분의 향교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배치는 물론이고 동무와 서무, 그리고 동재와 서재는 물론이고 담으로 둘러싸고 있어 전형적인 청룡백호의 배치와 그 격을 같이 한다. 고양향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배치의 묘미가 풍수의 이치를 따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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