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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계원군묘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6-20 조회수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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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일산구 성석동 산 83-3번지에는 향토유적 제 3호로 지정된 계원군묘 및 신도비(桂原君墓및神道碑)가 있다. 고봉동에서 진밭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신도비가 길 옆에 있다. 신도비는 묘에서 산 아래 70여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방형의 비좌 위에 흰 대리석 비신이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선조 15년(1582)에 건립한 것으로 앞면에는 ‘장민공신도비명’이라고 전자되었고 비문은 김계휘가 글을 짓고 이충원이 글씨를 썼다. 비신은 높이가 186cm, 폭 61cm, 두께 18cm의 규모이다. 신도비 바로 옆에 신축된 벽오재는 계원군의 사당으로 현판글씨는 이범승이 썼다.

신도비 뒤로 올라가면 여러기의 묘가 있다. 이중 상부쪽으로 올라가면 두 번째 열에 계원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두기의 묘에서 좌측(보는 방향에서)에 자리하고 있는 묘다.

계원군의 묘는 여흥현부인 민씨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 묘 앞에는 신구 3기의 묘비와 상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이 각각 배치되었다. 좌측의 흰 대리석 묘비 앞면에는 ‘승헌대부계원군의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높이 121cm, 폭 45cm, 두께 15cm의 규모다.

계원군 이의는 조선 중기의 학자, 종친으로서 자는 의지이다. 정종의 4대 손이며 백성군 원의 아들이다. 예종 1년(1469)에 출생하여 명종 9년(1554)에 돌아갔다. 4세 때에 이미 문자를 해득했고 일찍이 사서삼경에 통달한 학행으로서 계림부수에 봉해졌으며 연산군 8년(1502) 시예에 장원하여 명선대부에 올랐다. 이어 승헌대부에 오르고 중종이 즉위하던 1506년 돈령부도정을 거쳐 중종 26년(1531)에 계원군에 진봉되었다. 시호는 장민이다.

계원군의 묘역이 있는 용맥은 지나치게 넓은 평룡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용맥이 좌우로 펴진 평룡은 기맥이 흩어지고 결집되지 못해 응결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용맥은 단단하고 융기되어야 한다.

계원군의 묘는 지극히 평범하다 할 것이다. 혈상도 구비하지 못했으며 입수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어 극한 상황은 피하고 있다. 묘역의 형상이나 배치가 풍수의 이법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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