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에서 영덕으로 이어지는 34번 도로를 이용해 임하면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선어대를 지나 안동대학교 못미쳐 왼쪽에 대단히 큰 고건물이 있다. 안동향교다.
본 향교(本 鄕校)는 대설향교(大設鄕校)로서 성균관에 버금가는 광대한 규모로 명륜동(明倫洞 -지금의 안동시청)에 있었는데 1950년 6.25동란으로 인하여 교궁(校宮)이 전소(全燒)되고 소장서적(所藏書籍)이 소실(燒失)되어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는 것이 흠이다. 고증에 따르면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1년(1362) 춘 정월조 (春 正月條)에 「봉안구묘 가립어 복주향교(奉安九廟 假立於 福州鄕校)」라는 기록(記錄)이 있으니 이 때 이마 안동에 향교가 건립(建立)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조(朝鮮朝) 중종(中宗)12년(1517) 모재 김안국(金安國)이 경상도 관찰사(慶尙道 觀察使)로 부임(赴任)하여 각 향교에 소학을 강론하기를 권장(勸獎)하였는데 안동향교에도 그 시판(詩板)이 있다. 영가지(永嘉誌)(1602 ~ 1608)권 4에는 향교의 학령(學令) 20조목이 실렸는데 교생(校生)들의 일과(日課) 예절(禮節), 수령관림(守令觀臨)의 고강(考講)과 제술(製述)에 관한 평가(評價), 상벌(賞罰) 등 학문(學問)과 교화(敎化)에 주력(注力)한 기록이 있다.
일제시대에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안동향교도 역시 명맥만을 유지하던 시기였다. 경술 국치(庚戌 國恥)(1910)에서 광복(光復)(1945)까지의 항일 독립 운동(抗日 獨立運動) 기간중(期間中)에는 일제(日帝)의 탄압으로 겨우 전향(奠香)의 명맥(命脈)만 이어 왔다.
6.25동란(1950)으로 향교가 전소(全燒)되어 전적(典籍) 기물(器物) 일체(一切)가 일실(逸失)되었다. 당초 안동향교의 대성전은 대설로 성균관과 그 규모가 동일했다. 따라서 정전인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해서 사성십철과 공문72현, 송조6현 등 21위를 봉안하고 동서 양무에 우리나라 명현 18위와 모두 122위를 봉안했다. 그런데 이 웅장한 건물은 6.25동란때 소실되었다.
1983년 향교복설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지금의 위치인 송천동에 터를 잡고, 안동의 읍지(邑誌)인 《영가지(永嘉誌)》를 참고로 하여 1986년 다시 중건되었다. 이 때에 향회를 거쳐 동서무 제도 없이 오성과 송조6현 중 사현 및 동국18현을 공히 대성전에 모시는 위차를 새롭게 확정했다. 특히 송조4현은 성학계통에 유의하여 모셨다. 그 외에 특기할 사실은 위차를 정할 때 오성을 제외한 현인들에 대해서는 국적 구별없이 연차에 따랐다.
규모는 1곽 6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6동은 정전(正殿)인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청아루(菁莪樓), 부엌을 뜻하는 주사(廚舍)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하여 사성십철(四聖十哲)과 공문72현(孔門七十二賢), 송조6현(宋朝六賢)등을 봉안하였고, 대성전의 좌우에 있는 회랑인 동무와 서무에 동국18현(東國十八賢: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모두 122위를 봉안하였다.
현재의 자리에 중건하면서 동무와 서무의 구분 없이 5성(五聖: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과 송조6현 가운데의 4현(주돈이· 정이· 정호· 주자), 그리고 동국18현을 똑같이 대성전에 봉안하는 위차(位次)를 새로이 확정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위차를 정할 때 5성을 제외한 현인들에 대하여는 국적을 구별하지 않고 연차에 따라 봉안하였다. 대문 좌우에 있던 안동석사자상은 현재 안동대학교에 소장되어 있으며,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동향교는 규모가 크다. 아마도 전례를 비추어 개설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안동이라는 지역은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반촌에 해당하니 향교 또한 그 규모가 놀라웠을 것이다.
안동향교는 그 규모에 비해 풍수적으로는 그다지 특징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배산임수의 법칙은 지켜지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대성전 뒤의 배산이다. 배산을 살펴보면 가운데가 작은 계곡을 이루고 있다. 계곡은 비가 오면 물이 고여 흐르는 법이니, 명륜당에 피해를 입힐 것이 자명해 보인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월이 지나면 바람과 물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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