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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봉의 제실, 서지재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7-04 조회수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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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안동시에서 35번도로를 타고 도산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달린다. 와룡면사무소에 다다르기 전에 길 좌측에 서지리를 알리는 간판이 있다. 이 마을로 들어서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 산 아래 서지재사가 나타난다.

중요민속자료 182호로 지정된 의성김씨서지재사(義城金氏西枝齋舍)는 경북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 311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앞쪽으로는 밭이 펼쳐지고 뒤로는 산을 등지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이다.

김성일의 묘가 있는 산아래에 자리잡은 ㅁ자형 집으로 앞면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앞면 아래에는 광, 대문간, 외양간이 있으며, 위에는 누마루를 만들었다. 누는 제사 후 음식이나 술을 마시는 자리로 사용하였고, 몸채는 제사에 쓰이는 음식이나 재료를 장만하는데 쓰였다.

안채는 뒤쪽의 경사지를 이용해서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누마루 바닥보다 안마루의 바닥이 높다. 누 아래의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대청이 있으며, 대청 왼쪽으로 안방이 있는데 뒷방을 통해서 대청으로 직접 출입할 수 있다. 오른쪽에는 2칸의 윗방과 마루방이 있고, 사랑방 2칸이 배열되어 있다. 앞채의 누마루는 정면과 왼쪽 옆면이 벽이며, 각 칸마다 중앙에 문이 있다. 또한 안대청에서 누마루까지는 난간을 세운 쪽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전면에 누다락이 있는 ㅁ자형 재사건물의 일반적인 형식을 보이고 있으나 안대청을 누마루보다 더 높게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본 건물은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묘제(墓祭)를 위해 건립된 재사(齋舍)로 건축연대는 확실치 않다. 본 재사 서편 약 50m쯤 상거(相距)한 위치에 있는 학봉 신도비(神道碑)의 건립연도가 숭정(崇禎)7년(1634)으로 되어 있지만 재사는 이보다 늦은 1700년대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본 재사는 학봉의 묘소가 있는 산하의 동편기슭에 동남향으로 배치되었다. 건물의 앞쪽은 밭이 넓게 전개되었으며 약 200m 전방에 도산서원(陶山書院)으로 통하는 국도가 보인다. 건물의 정면은 누(樓)다락집으로 되어 있으며 안채는 뒤쪽의 경사지를 이용하여 높은 터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안마루의 바닥높이가 누마루 바닥보다 높다. ㅁ자 재사의 5칸(間) 누다락 정면은 누하에 원주(圓柱)를 세우고 어간(御間)에 대문을 내었을뿐 양측의 전면은 토벽(土壁)으로 막았으며 안마당쪽을 개방하여 수장공간(收藏空間)으로 사용하고 있다.

누상(樓上)은 각주(角柱)를 사용하였고 우물마루 깔았으며 지붕가구는 삼량가(三樑架)로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웠다. 보밑에 깔아놓은 조각한 보아지는 수평으로 길게 뻗어나와서 무력한 감을 준다. 누마루의 정면과 좌측면 벽은 판벽(板壁)이며 매칸(每間)의 중앙에 양개(兩開) 널문을 내었고 안마당쪽은 개방하여 헌함을 설치하였다.

누하 어간(御間)의 대문(大門)을 들어서면 각변(各邊)이 3칸인 방형(方形) 중정(中庭)에 이르는데 정면에는 높이쌓은 자연석 축대위에 각주(角柱)를 세운 3칸 정면 대청이 설치되어 있다. 우물마루를 깔아놓은 대청의 상부가구는 삼량가(三樑架)로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워서 마루대를 올려놓았고 뒷벽에는 각칸(各間)의 중앙에 두짝열개 널문을 달았다.

대청 좌측의 마당쪽으로 나앉은 안방은 윗머리의 뒷방을 통해야 대청으로 직접 출입할 수 있다. 대청의 우측에는 2칸통으로 된 웃방과 마루방 1칸 ·사랑방 2칸이 차례로 배열되어 앞채의 누마루 측면과 직교하였고 안대청에서 누마루까지는 난간을 세운 쪽마루로 연결하였다.

전형적인 재사의 형태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양반가의 살림집으로 어울린다. 현재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관리인이 드나들고 있다 한다. 배산 임수의 법칙에 어울리는 집이며 산자락 끝에 자리하고 있어 기운이 보전되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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