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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갈한 비구니 사찰, 금정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7-25 조회수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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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포의 유일한 왕릉인 장릉 근처에는 금정사라는 사찰이 있다. 금정사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장릉의 원찰이다.

금정사(金井寺)는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풍무리 662번지 금정산(金井山)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최근 승가대학이 들어서서 조금은 번잡해졌다.

금정사는 김포의 자연환경 중 최적의 환경 아래 자리한 전통사찰로 지리적으로 산이 없는 김포의 보석같은 산 금정산과 그리고 그곳에 묻혀 있는 원종(元宗)과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의 왕릉인 장릉을 보호하는 수호사찰이다. 옛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나 장릉의 능침사찰(陵寢寺刹)로서 장릉이 가지는 울창한 수림을 정원 삼아 500여년간 사찰로서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금정사는 장릉 너머 자리한 사찰로 정돈된 비구니 수행가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은 모두 금정산을 축으로 길게 뻗은 대지 위에 자리하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요사채, 우측에 범종각이 산비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다. 건물은 모두 동남향하고 있으며, 정돈된 축대 위에 파릇한 잔디, 아기자기한 조경, 고풍스런 요사채 등 어느 하나 손길가지 않은 깔끔함 속에 비구니 수행도량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금정사라는 현판이 걸린 당우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비교적 단정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그러나 들어서자 마자 축대위에 있어 위압감이 느껴진다.

걸어들어가면 대웅전 앞에 7츨석탑이 보인다. 금정사의 석조물로는 중정에 있는 화강암으로 만든 다층석탑과 석등 2기, 그리고 비림에 있는 고근스님 부도비와 계단석 시주비가 있다. 고근스님 부도비는 자연석을 비좌로 삼아 그 위로 비신을 놓고, 그 위에 팔작지붕 모양의 비수를 올린 모습으로, 전면에 고근비구니부도비라고 새겨져 있다. 크기는 총고 220㎝, 비신 145× 52.5× 22.5㎝이다. 칠층 석탑은 전형적인 한국의 탑과는 다르고 어떻게 보면 일본의 탑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면 가장 안쪽에 대웅전이 보이고 그 오른쪽 조금 가까운 곳에 요사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 당우가 보인다. 현판에는 본원지(本願地)라고 흘려쓴 글씨가 있다.

이 건물은 대웅전 축대 아래에 범종각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로, 1970년대 고근스님이 조선후기 향교건물을 옮겨 지은 것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대형 건물로 평면은 H자형 구도를 취하며, 지붕 역시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 결합된 복잡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건물은 누각으로 쓰이는 곳, 대방으로 쓰이는 곳, 그리고 부엌과 작은방으로 쓰이는 곳 등 옛날 향교의 사랑방구조를 가지는데, 현재 금정사의 선방 및 담화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요사는 남쪽면에 하층석주가 있는 누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인데, 누각 상부에는 1920년「법당건축시권대시주열록(法堂建築時勸大施主列錄)」,「법당건축동참시주열록(法堂建築同參施主列錄)」등 4기의 현판이 걸려 있어 당시 금정사의 연혁을 짐작할 수 있다. 현판에는 당시 시주자들의 명부가 빼곡이 적혀 있으며, 사명(寺名) 역시 봉릉사(奉陵寺)로 기록되어 있다.

이외 건물 중앙방에는 앉은 키 36㎝, 무릅 폭 22㎝의 소형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어 옛날에 이곳을 인법당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은 스님들의 선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소형감실을 중심으로 삼면에 용상방이 걸려 있다.

전반적으로 후대 일부 보수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향교건축물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어 나름대로 문화재적 가치가 놓은 건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건물의 명호는 본원지(本願地)로 현재 주지스님인 명훈스님이 지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본원지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산자락 끝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전f형적인 기맥을 차용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고택의 입지와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은 그리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안으로 들어서 보면 안이 우묵하게 파인 ㄷ자를 그리고 있다. 정면에서 보면 오른쪽 건물의 일부가 튀어나와 마치 [그]자를 옆으로 눕혀놓은 듯한 모양이다. 이는 흔히 도투마리라고 말하는 형태와 유사하다. 한쪽이 잘린 듯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퇴색적이고 후퇴하는 가상을 가지고 있다.

이와 유사한 도투마리 집은 영어의 대문자 [H], 혹은 한문의 [工]자 형태를 지니게 되는데 이와같은 가상은 퇴락하는 가상이다. 흔히 사람이 죽거나 심하게 다치며 집안이 망하고 가난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정면 가장 갚은 곳에 지어진 대웅전은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73년 고근(古根)스님이 중수한 후, 1981년 정념(淨念)스님이 신축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건물로 가람의 상단에 위치하며, 높은 계단석 위에 장방형 대석을 기단 삼아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은 금정사의 가장 높은 당우로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대웅전의 자리는 요사채의 자리보다 못하다. 기맥은 찾기 어렵지만 좌우의 지각이 가려주고 보호해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수기(水氣)의 침습이 느껴지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종루가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우측 축대 아래에 있는 건물로 금정사의 불구인 종을 달기 위해 1989년에 지은 건물이다. 건물 외부는 사면이 홍살과 기둥사이를 장식하는 낙양각으로 단장되어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1989년에 조성된 금정사 대종과 1928년에 조성된 소종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금정사의 입지는 좋은 편이다. 그러나 측면으로 지나치게 긴 배치를 하고 있으며 당우의 배치가 정통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좋은 자리에 지어진 요사의 경우에도 가상이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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