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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한광윤묘는 용사취회혈이라는데.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8-03 조회수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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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영광의 명당으로 소문난 법성면 신장리에 있는 용사취회혈(龍蛇聚會穴)이라고하는 한광윤 선생의 재실. 무척이나 찾기가 어려운 곳이다. 마을이 뛰엄뛰엄있고 논과 밭 사이에 구릉이 많다보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법성면에서 영광읍으로 이어지는 22번 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덕성리 법성포초교 진랑분교장 부근, 와탄천을 건너기전에 심덕교로 들어서서 찾아가든지, 아니면 법청포초교 진랑분교장 전 약 1킬로 전에 지장제 저수지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덕흥리 미원당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제실 앞은 제법 넓다. 제실도 무척이나 크다. 재실 오른쪽으로 돌아가 보면 두기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고 뒤로 선생의 묘가 있다.

묘역으로 올라 살펴보니 지나치게 넓다고 느껴지는 용맥의 하단부, 산진처라고 부르기 어려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실 용맥이 지나치게 넓으면 불배합이 될 가능성이 높고 형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응결이라는 말 속에는 돌출이라는 의미가 섞여 있는 것이니, 약한 기맥은 응결 하지 못한다. .

한광윤은 고려시대 사람이다. 선생은 고려 명종때의 인물로 예빈경의 벼슬을 지낸 사람으로, 자세한 이력을 알기 어렵다. 청주한씨 후손들은 이 묘의 발복으로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곳은 대단한 명당으로 알려졌다. 흔히 용사취회형(龍蛇聚會形)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가 幹龍을 용으로 보고, 枝龍인 靑龍과 白虎)를 용보다 못한 뱀으로 보아 용과 뱀들이 모여 회합을 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형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형상을 따진다고 하는데 많은 경험으로 보면 이기론을 익히고 수련하며 주장하는 지사들이 물형론이나 형상을 더욱 많이 주장하는 경우를 본다. 이는 이기론을 주장하는 지사들이 기를 설명하기에 무리가 있어 물형론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물론 이기론을 주장하는 지사들은 형기론을 주장하는 지사들이 물형론을 주장한다고 하는데 형기론을 올바로 배운 지사라면 물형론을 주장할 이유가 없다. 즉, 물형론을 주장하지 않아도 와겸유돌의 4가지 혈상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나친 억측인지 알 수 없으나 사부로부터 배우고 익히며 수많은 관산을 한 결과로는 그렇다.

한광윤의 묘를 비하할 생각은 없으나 굳이 토를 단다면 다른 묘역의 경우에도 이처럼 간룡이 나아가 혈을 이루고 지룡이 갈라 나와 좌청룡과 우백호를 이루어 환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모두 용사취회형인가? 아마도 용사취회형으로 부르는 이유는 낮은 산자락이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곳에서 응결이 이루어진다면 이처럼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靑龍, 白虎, 案山이 모두 묘역을 향하여 환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묘역이 혈장이 이루어졌다는 가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살펴보니 비록 낮은 산이지만 멀리서부터 幹龍으로 내려온 龍이 완만하고 평탄하게 之玄字 굴곡으로 변화가 없이 내려왔으므로 老龍에 해당하고 靑龍과 白虎는 지룡(枝龍)이다.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용의 힘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치만 높아도 산이라는 말을 이해한다면 이곳에서는 높은 산에 해당한다. 穴場 뒤가 그다지 표시나지 않을 정도인지라 過峽處인지도 쉽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미미하다. 입수 바로 앞에 壬子로 혈판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전형적인 혈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

대부분의 풍수사들이 한광윤의 묘역이 매우 뛰어난 혈장이라 말하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혈상이 완벽하지 못하고 강(堈)이 확연하지 못하니 설혹 부차적인 사격과 수세가 좋다하여도 그 격이 아주 뛰어나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다.
수구를 격정 하여보니 巽巳破에 좌향은 壬坐丙向이라 殺人大黃泉에 해당한다. 후손의 말에 의하면 이곳의 묘를 실전하였다가 1740년경에 땅에 뭍혀 있는 묘갈을 부근에서 찾았다고 한다. 이는 오행과 수격으로 따져보아도 아마 殺人大黃泉의 영향이리라 생각된다.

주위의 局勢는 아담하며 주위의 산들이 모두 야산으로 야트막하다. 전형적인 평야지대의 산세이다. 안산은 一字文星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지나치게 늘어져 어울리지 않으니 蛾眉沙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案山의 모양은 순하게 보이지만 밑 부분이 약간 배가 불러서 朝堂을 침범하였으며 이는 살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격하지 않고 부드러우니 최악의 순간은 면하리라는 것을 알수 있다. 수구는 흔하지 않은 경우로 不通舟(불통주)라하여 배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고 交鎖를 이루어야 좋으나 수구가 약간 열려있어서 흠이 된다. 입수에서는 막힌 듯 보이나 당판에서는 열린 듯 보인다. 그러나 정면으로 열리지 않고 바람도 돌아드니 그다지 나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용이 강하지 못하고 혈판이 약하니 근본적으로 뛰어난 혈이라고는 판단하기 어렵다. 형기론에만 기준을 둔다면 그저 평번한 무해지지에 불과하다. 어느 지역이나, 어느 지사나 배운바가 다르고 그 주장이 다르다고는 하나 이처럼 다르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형기론에서 강(堈), 달리 혈을 이루는 돌출된 혈장이 없다면 혈로 인정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물형론, 혹은 혈상론은 부차적인 것으로 그 형상을 먼저 보는데 혈상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약하면 사격은 자연적으로 부차적인 것이다.

그런 이치로 따지면 한광윤의 묘는 소문처럼 대단하지는 못하다. 즉 강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기론에 입각하고 물형론에 입각하며 팔십팔향을 적용하면 대길지, 혹은 대명당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묘역을 쓴 가문이나 인물됨을 중심으로 보지 말고 순수하게 땅을 살피는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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