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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총과 연주패옥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9-20 조회수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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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문경읍에는 예로부터 연주패옥이라 불리는 혈자리가 있다고 한다. 문경시 동로면사무소에서 가까운 곳이다. 동로면사무소에서 문경읍으로 이어지는 901번 도로를 따라 약 2킬로미터를 가면 좌측에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고 그 옆에 무덤이 두개 있다. 그중 작은 무덤이 마총이다.

이 마총과 연관지어져 연주패옥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연주패옥(連珠佩玉)이란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구슬을 잇고 구슬을 찼다"는 뜻인데 연주패옥형 명당이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이여송 부대에 속해 술사로 참가한 두사총이란 사람이 당시 조선의 명재상인 약포 정탁 대감의 인품에 감복하여 약포를 위해 잡아준 명당 자리이다.

두사총이 그 명당자리를 연주패옥의 자리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연주패옥형 명당은 경북 문경군 동로면 적성리 황장산(황정산) 기슭에 있다고 한다. 두사총이 위 명당자리를 잡아줄 때는 위 동로면이 경북 예천군에 속했던 지역이다. 위 명당의 형세가 "선녀가 화장을 하기 위해 거울을 보면서 목걸이(연주패옥)을 늘어뜨린 형상으로 이곳에 무덤을 쓰면 그 후손 중에 금관자 옥관자가 각 서말이 나올 자리"라고 설명하였다고 한다.

금관자 옥관자란 정3품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이 망건끈에 다는 관자로 결국 3품 벼슬 이상을 할 후손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는 자리라고 한다. 두사총이 위 명당자리를 알려줄 때 약포대감은 연로하였기에 그의 구종을 데리고 가서 자리를 알려주고 명나라로 떠났는데 나중에 약포가 죽은 뒤 약포의 아들이 그 종을 데리고 위 적성리 부근에 가서 종에게 명당자리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 순간에 말이 갑자기 놀라 발길질을 하자 발길에 구종이 차여 즉사하고 명당 자리를 알려주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약포의 아들은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베었고, 다른 지관들을 동원해 명당자리를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고향 이웃 동네인 현재의 예천군 호명면 본리 뒷산 위라곡에 묘를 썼다고 하고, 말의 시체는 주민들이 그곳 길가에 무덤을 만들어 주어 지금까지 동로면 생달리로 가는 길가에 마총과 조그마한 비석이 남아 있다.

그 후 현재까지 지관들이 위 황장산 일대에서 위 연주패옥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아직 그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명한 풍수사라면 능히 주변을 뒤져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첨언하자면 부근의 산세는 매우 뛰어난 것으로 소나무 주위를 싼 대부분의 산들이 돌출되어 있어 능히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눈여겨 볼 것은 마총 뒤에 모셔진 묘역이다. 누구의 묘역인지 비석도 없다. 그러나 바위로 이루어진 혈판에 모셔져 있으며 좌우로 돌이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 약간의 변이는 있으나 해목혈(蟹目穴)로 보아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해목혈은 매우 귀한 혈로서 속발하고 후손이 급제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혈로 알려져 있다. 단지 흠이라면 주변산세가 높아 조금은 억압을 당하는 형상이지만 천옥은 아니다. 또한 문경읍 방향의 산세에 깊이 파인 협곡이 있으니 팔요풍을 따져야 할 것이다.

혈판 자체는 충분히 도반을 넘어서고 있으니 귀한 혈판이다. 그 대소와 높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낮은 곳에서도 좋은 혈판이 나올 수 있다. 기맥은 은맥으로 입수하였으며 중간에 논이 있는 것은 나중에 개간한 것이다. 그러나 은맥이기 때문에 입수룡에 전혀 지장은 없다. 혈판 주위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아마도 배토장으로 묘역을 조성하였을 것이다. 기맥의 흐름으로 보아 전순이 너럭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니 후손중에는 대단히 명망있는 종교인이 출생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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