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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혜국사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09-20 조회수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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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혜국사(惠國寺)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13번지 주흘산(主屹山)에 자리 잡은 대한 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다. 수안보를 지나 연풍에서 이화령터널을 지나 문경새재도립공원 안으로 들어가 혜국사로 올라가는 길을 택하면 된다.

혜국사(惠國寺)는 주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문경새재의 3관문을 품고 있는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鎭山)으로 멀리서 보아도 절로 힘이 넘치고 험한 협곡끼리 서로 어우러져 그 비경이 매우 뛰어나다. 용추, 원터, 교귀정 등의 명소와 혜국사의 옛길에 있는 여궁폭포는 특별한 이름 때문에 더 유명해진 곳이다. 칠선녀가 구름을 타고와 여기서 목욕을 했다는 곳으로, 밑에서 쳐다보면 그 형상이 마치 여인의 하반신과 같다 하여 여궁 또는 여심폭포라 불려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파랑소라고도 부른다.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나, 실타래 한 개가 다 들어갈 정도로 물이 깊다고 전해진다. 여궁폭포는 용추와 연결되어 있어서 실타래를 넣으면 용추로 나온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수해가 나서 막혔다고 한다. 높이 20m의 장엄한 폭포는 수정같이 맑은 물과 노송의 멋, 기암절벽의 풍치 등과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수려하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가운데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다고 한다.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 새(鳥)로 된 고개라는 뜻으로 새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을 설치하고 국방의 요새로 삼았던 문경새재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관문인 동시에 희망의 땅이었다. 조선 태종 때 열린 새재로 인해 귀한 물산이 이 고갯길로 오고갔고, 무수한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급제를 꿈꾸며 이 길로 한양으로 올랐다.

그 옛날 새재를 오고갔던 많은 사람들이 혜국사에 들러 무엇을 기원했을까? 위험을 무릅쓰고 험한 산길을 넘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혜국사는 휴식처이자 기도처로 부처님 앞에서 너나없이 편안하였던 안심처였을 것이다.

새재 제 1관문에서 약 1킬로 정도 가면 영화 촬영장소로 이용된 세트가 있고 우측으로 돌비석이 혜국사를 알린다. 조금은 가파른 2km거리의 산길을 굽이굽이 오르다 보면 푸른 하늘이 더욱 눈이 부신 혜국사 대웅전이 부처님과 함께 내려다본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숨이 차오르면 혜국사 입구를 지키는 부도탑 곁에서 잠시 쉬었다가 높은 언덕을 휘돌아 걸어 오르면 혜국사의 작은 마당이다. 정면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스님의 방과 다실이 있고 그 뒤편으로 관음전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 관음전이 대웅전이었다고 한다. 정면 왼쪽에는 허름한 요사 하나에 공양주 보살님 혼자 기거하고 있다.

새로 지어진 대웅전을 오르는 계단은 100개가 쉬이 될 것 같아 엄두를 못 낼 수도 있지만 계단을 다 밟고 올라서서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산의 비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신선이 사는 천상세계가 바로 이곳임을 알 수가 있다. 대웅전 왼쪽 뒤로는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주흘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온다. 옛날 주흘산이 솟아오를 때에 산 밑에 도읍을 정하리라고 생각하고 솟아 올라보니 서울의 삼각산이 먼저 솟아 있어서 삼각산을 등지고 앉았다고 한다.

주흘산의 웅장한 산세는 울창한 숲을 이루어내고 곳곳에 많은 명소들을 품고 있다. 옛날 7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높이 10m의 시원한 여궁폭포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혜를 입었다는 데서 유래가 나온 혜국사, 팔왕폭포등은 주흘산이 자랑하는 비경이다.

절에 들어서기 전, 절 입구 왼쪽에 부도밭이 있고 여기에 혜국사에 머물렀었던 스님들의 부도 4기와 탑비석 2기가 봉안되어 있다. 모두 조선시대에 조성한 것이다. 부도의 주인공은 연곡 사신(淵谷思愼), □월 여상(□月呂尙), 자영(慈影), 해월(海月) 스님 등이고, 비석은 연곡 사신과 여상 스님의 탑비이다. 이 가운데 연곡 사신 스님의 탑비는 명문에 의해 1693년(숙종 19)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도밭은 기맥을 타고 있는 전형적인 위치이다. 일반적인 사찰의 부도가 사찰에 이르기전 길가에 세워진 것과 비교하면 풍수적으로 매우 훌륭한 위치이다.

굽이를 지나쳐 내려가면 혜국사이다. 높은 곳에 대웅전(大雄殿)이 자리하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대웅전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안에는 아미타불좌상을 본존으로 관음보살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을 함께 모셨다. 이 아미타여래 삼존상은 조선 후기에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삼존상의 뒤에는 최근에 조성한 후불탱이 있고, 그 밖에 지장탱과 신중탱이 있다. 전에는 1804년(순조 4)에 조성한 후불탱·지장탱·신중탱이 있었으나 지금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에는 또한 조선시대 후기의 동종이 있다. 전체 높이 71.5㎝, 입지름 67.5㎝의 중종(中鍾)으로, 종신에 보살입상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보살입상 사이의 아래쪽에 다음과 같은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大施主嘉善大夫 □未堂灌□□□茶山中所望成就之願」, 「大施主張春成子庚□生在天所望成就之願」이다.

삼성각은 대웅전 왼쪽에 석축을 쌓아 건립했다. 안에는 1975년과 1989년에 각각 조성한 칠성탱, 산신탱, 독성탱을 봉안했다.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있으며 지금 있는 것은 최근의 것이다. 중앙에 모셔진 칠성탱화(七星幀畵)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른쪽(向左)에는 산신탱화(山神幀畵)가 걸려 있는데, 백발의 노인이 중심에 크게 배치되거 옆에는 항상 귀여운 모습의 호랑이가 그려지는 것이 도상적인 특징이다. 왼쪽(向右)에는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홀로 깨달은 독성을 크게 그린 독성탱화(獨聖幀畵)가 봉안되어 있다. 독성은 흔히 나반존자(那畔尊者)로 잘 알려진 아라한이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관음전이 나온다. 그러나 관음은 탱화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은 고승들의 초상화로 꾸며져 있다. 영각을 겸한 것으로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다포계(多包系) 형식의 건물이다. 기와는 겹처마로 팔작지붕을 올렸다.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으며, 바닥은 마루를 깔았다. 불단에는 보살좌상(菩薩坐像)의 탱화가 있을 뿐 일반 사찰이 보살상을 안치하는 것과는 달랐다. 벽면에는 고승들의 덕(德)을 기리기 위하여 그려진 진영(眞影)들이 걸려 있다. 이 진영으로 혜국사 스님들의 업적과 공덕을 짐작할 수 있다.

혜국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로 짐작된다. 오래된 사찰이라 해서 반드시 좋은 풍수적 요건을 지닌 것은 아닌 듯하다. 지나치게 가파르기 때문에 사찰이라 해도 좋은 입지로 보기는 어렵다. 깊은 산속이라 해도 공간이 있어야 사찰의 터로 요긴할 것이다. 물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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