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구국의 횃불과 같은 흔적을 남긴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는 1989년 12월 24일에 충남 기념물 75호로 지정되었다.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만해의 생가는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2번지에 자리하고 있지만 서울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초입에 문화관이 있고 호리병 모양의 지세 안쪽에 생가가 있다. 낮은 야산을 등진 양지 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생가가 쓰러져 없어진 것을 1992년에 생가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사적화하기 위해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생가인 초가 외에 사당, 삼문, 관리사, 화장실 등을 건립하였으며, 주변 정비사업을 추진하였다.
전형적인 초가집이다. 가옥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초가인데 양 옆으로 1칸을 달아내어 광과 헛간으로 사용하고 울타리는 싸리나무로 둘렀다.
우선 양택삼요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즉, 배산임수의 법칙을 지켰는지, 전저후고와 전착후관의 배치를 이루었는지 살피기 마련이다. 그 후에 동사택과 서사택의 구조를 살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이다.
한용운 선생 생가의 입지는 전형적인 호리병 구조의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혈판위에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가옥이란 반드시 혈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양택의 명당이라는 구조는 교쇄가 이루어졌으며 충이 없는 곳이다. 한용운 선생의 생가는 매우 뛰어난 입지를 가지고 있으며 양택삼요의 요건을 대부분 충족하고 있다. 하지만 교쇄는 허약하여 앞이 열렸으니 바람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보가 필요한 지세이다.
우백호 방향으로는 긴 골짜기가 있다. 그리고 그 골짜기 방향에 사당이 있다. 언뜻 보면 계곡에 지어진 듯 보인다. 만약 계곡에 지어졌다면 좋다고 볼 수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하는 곳이 계곡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계곡을 피해 산기슭에 지어져 있다. 올바른 배치는 아니라 해도 가장 나뿐 바람의 영향은 벗어났다.
유명한 인물이나 역사적으로 그 자취를 남긴 조상의 생가를 찾아가면 의례히 생가의 터를 살피고 이어 주변 사격을 살피기 마련이다. 즉 주변 사격에 따라 생가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변사격도 눈여겨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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