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청이 있는 곳에서 모가면으로 향하자면 70번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대포리석조여래입상이 세워져 있는 곳은 일반적으로 이천시 대포동 산123-1번지라고 하는데 자료마다 주소가 뒤죽박죽이다. 다른 자료에는 경기도 이천시 대포동 산81-3번지라고 하는데 어느 주소가 맞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안내간판에는 경기도 이천시 대포동 산81-3번지라고 적혀 있다.
이 불상은, 화강암 1석으로 조성한 여래(如來)의 상으로 산자락 끝에 남향으로 직립(直立)해 있다. 엉치 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어 실재의 높이는 4m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나, 돌출되어 있는 현재의 높이는 239㎝, 어깨 폭은 96㎝이다. 머리는 소발(素髮)로 육계는 큰 편이며 상호(相好)는 원만하나 양볼이 약간 비대하여 고려불상(高麗佛像)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전형적인 미륵의 형상인데 여래불이라 한다. 이마에는 큼직한 백호공(白毫孔)이 있어 보주(寶珠)를 박았던 흔적이 완연하다. 세월의 잔재인지 두 귀는 떨어져 나갔으며, 양미간, 비량(鼻梁), 구진(口唇), 그리고 양볼과 턱 등에 걸쳐 심한 파손을 입고 있다.
시멘트로 보강한 목에는 3道가 있고,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양 팔에 걸쳐 의문(衣文)이 밑으로 흐르면서 약간씩 펴져 있다. 허리 부위에는 요대를 둘렀는데, 그 복판을 묶은 결대(結帶)의 조각(彫刻)이 주목된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어 손바닥을 외향하게 하여 엄지와 검지를 마주 대었다. 손바닥에 뚜렷이 새겨 놓은 손금이 재미있고, 왼손은 직하(直下)하여 옆에 대었다.
산자락 끝에 자리하고 있어 마을의 입구를 지키는 장승과도 유사한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그러나 외견상으로는 여래불이다. 미륵의 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근 안성이나 용인, 혹은 이천에서 볼 수 있는 미륵과의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이 가능하다. 용화사상의 영향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명은 다양하다. 지명을 이해하면 풍수의 어느정도는 인식한다. 여래입상이 세워진 곳은 애초의 자리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랬기에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부가 흙에 파묻혔다,
지명을 보면 대포리(大浦里)이다. 이와 같은 지명으로 보면 괴거에는 물이 많은 강이 있거나 호수가 있었을지 모른다. 혹은 미래에 이곳이 큰 물이 들어오는 곳이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평야지대다. 평야라고까지 헐 수 없어도 논으로 이루어진 지역이고 큰 물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물론 나라에서 댐을 세울 계획도 없으며 댐을 세울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대포리라는 지명으로 보아 과거에는 이곳에 큰 물이 흘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여래불은 배를 타거나 많은 물로 인해 사람이 죽거나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세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대포리석조여래입상부근에서 이천쪽으로 약 1킬로미터를 거슬로 올라가면 좌측으로 배맘면으로 향하는 70번 도로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기전, 그러니까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곳에서 70번 도로가 갈라지는 도로 중간에 대포동이라고 적힌 돌비석이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 골짜기 방향에는 소나무가 일직선으로 심어져 있고 xx산업주식회사의 건물이 있다. 이 건물 앞에 심어진 소나무는 애초부터 심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뒤가 골짜기이고 앞이 넓어진 지형의 형상으로 보아 충분히 풍수림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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