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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미리 미륵불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11-15 조회수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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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우리의 유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지도에라도 표시가 되어있다면 인근에 찾아가 물어보면 된다, 그런 점에서 두미리 미륵불은 찾기가 어렵지 않다.

이천시에서 안성 죽산면으로 가는 길을 따라간다. 70번 도로를 따라 가다가 대포동에서 우측길을 타야 70번 도로이다.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여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기를 약 15분, 두미리 미륵불을 알리는 간판이 있다. 물론 미륵불이 아니고 미륵당이다.

마을 가장 위쪽에 미륵당과 당나무가 있다. 그런데 마을은 축사가 많아 길이 마구 엉켜있어 조금 고생을 할 수 있다.찾아보니 마을 뒤쪽에 해당하는 곳이며 대여섯 그루의 굵은 느티나무가 용화세계 같은 숲을 이루고 그 가운데 미륵불이 이웃집 아저씨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아주 작은 규모의 미륵이다. 상처를 입었는지 목 부분은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다. 미륵불은 내세불이다. 힘들고 고난을 겪는 이 땅의 중생들이 바라고 바라던 바로 마음의 안식이 바로 미륵이다.

미륵이라는 말은 범어로 마이트레야(Maitreya)로서 자씨(慈氏)보살이라고 불린다. 미륵은 성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이며 무승(無勝) 또는 막승(莫勝)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의 뒤를 이어 오실 부처님으로 현재에는 도솔천 내원궁에 천인들을 교화하고 계시다가 56억 7천만년 후에 아버지 수범마와 어머니 범마월 사이에서 태어나서 화림원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시고 3회에 걸쳐서 설법을 하시어 300억의 중생을 제도 하신다고 한다.

이 때 이 용화삼회에 참석하여 깨우침을 얻으려는 모임이 미륵하생 사상이며, 이 시간이 너무 긴 것을 알고 미리 미륵보살님이 계시는 도솔천에 올라가 모시고 있다가 미륵부처님으로 내려오실 때 따라 내려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상이 도솔상생 신앙이다.

일부에서는 미륵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용할 향을 미리 묻어 놨다가 쓰려고 한 일도 있다. 주로 바닷가에서 단체로 사람들이 모여서 향을 묻었다는 기록을 남겨 놓았는데 이를 매향비라고 하며 우리나라에 여러개가 발견되었다. 침향이라고 불리는 이 향을 찾아내는 일이 한때 직업인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몇곳에서는 이 침향을 찾기도 했다.

신라에서는 화랑을 미륵선화라고 하였으며, 화랑을 따르는 무리는 용화향도, 즉 미륵부처님께 향을 올리는 자라고 하고 있음을 보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륵신앙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백제에서도 미륵사를 36년에 걸쳐서 지은 것을 본다면 이 땅 위에 미륵세계를 건설 하겠다는 백제인들의 염원을 알 수가 있다. 근대 이후에는 석불로 된 부처님은 다들 미륵이라고 부르며 그렇게 알고 모시는 분으로 일반 대중들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륵이라는 말이 불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이론이 있다. 불교의 미륵(maitreya)이나 그 어원으로 알려진 힌두교 미트라(mitra)가 같은 어원으로 彌(두루 미 가득찰 미) 勒(굴레 륵)이라고 하여 전우주에 가득찬 신성 인격신이며 우주의 주재자를 불교세계의 어원으로 풀어서 말하고 있다. 이는 이집트 문명권에서 우주의 절대자를 태양신- 미트라 신앙과 같은 맥락이다.

힌두교의 미트라는 엄격한 바루나와 짝을 이루면서 자애로운 모성성을 상징하는 신이다. 이런 미트라에서 비롯된 미륵이 동아시아에 수용되면서 여성화되고 여신과 동일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륵이 자씨(慈氏)보살로 번역된 것이나 몽골의 창조여신 마이다르(미륵)가 좋은 사례다.

당나무가 우거지고 미륵이 함께 자리하 것으로 보아 이 미륵은 당산과 같은 역활로 받아들여졌고 치성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당산과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마을의 무사안일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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