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로 52번지에는 광주대학교(光州大學校)가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사립종합대학으로 1981년 3월 학교법인 백인학원(百忍學園)에서 광주경상전문대학으로 설립하였다. 1984년 정부의 개방대학 설치 시책에 따라 4년제 광주개방대학으로 설립 인가되었고, 1988년 광주경상대학으로 학교명을 변경하였다가 1989년 11월 종합대학교로 승격하여 광주대학교로 학교명을 변경하였다.
한국 사학이 건립되기 시작한 시기는 물밀듯 밀려오는 외세와, 이에 대한 조선왕조 지배체제의 무력한 대응 으로 민족의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던 근세 초였다. 대한제국말기와 일제지배의 초기에 설립 되었던 한국사학들의 설립은 신학문을 습득하여 우리 사회를 근대화 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절실한 민족적 요망에서 출발하였다.
대성학교(도산 안창호), 양산 소학교(백범 김구), 오산학교(남강 이승훈), 현산학교 (한서 남궁억), 홍화학교 (민영환)등 민족운동의 선구자들에 의해 설립된 대부분의 학교가 그러한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연변, 만주, 간도 등 우리 동포들이 이주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지역까지 설립되었던 학교는 동포 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역할을 하였다.
이에 일제는 구국적인 민족 교육운동을 말살하기 위해 사립학교령, 조선교육령 등을 공포하여 친일교육의 기반을 강화 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이러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사학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족교육에 고무된 민중들의 자주독립의 열망은 3.1독립운동으로 폭발하고, 6.10 만세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법인 호심학원 산하 광주대학교는 바로 이상과 같은 근대 민족사학의 애족적이고 구국적인 전통을 잇고자 하는 동기에서 창설되었다. 개화 초기와 일제 하의 애국하는 차원에서 설립, 운영하던 한국사학의 전통 이념을 건학철학으로 - 학교 법인 호심학원 설립 정신 - 비록 본교의 설립시기가 일제하와 같은 식민지 시대는 아니 지만, 우리의 근대 민족사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초창기의 구국적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민족사의 밝은 미래를 위해 기여코자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세계사에 유래없이 반만년의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발전해 온 단일 민족이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 세계사에 새롭게 등장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쟁탈을 위한 각축전의 과정에서 일본 제국 주의 세력에 의해 자주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또한 일제의 패망과 함께 맞이한 민족의 해방은 민족의 자주역량 에 의해 쟁취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민족의자주적 의사에 반하여 분단되고 말았다.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하는 세계적인 냉전체제 속에서 강제로 양분된 우리 민족은, 대립하는 양체제의 대리전적인 성격을 띠고 전개된 1950년의 한국전쟁을 겪게 되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불과 5년 만에 우리 민족은 현대 세계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에 휘말림으로써 해방 이후 미약하게나마 잔존해 있던 산업기반, 물적자원, 인력 등 모든 민족역량이 황폐화되고, 소진되어지고 말았다.
36년 동안 우리 민족을 수탈했던 일제는 물러갔으나 동강난 국토와 전쟁의 참화로 붕괴된 생산기반, 기아선 상에서 헤매는 서민 대중, 그리고 대립된 사상으로 분열된 사회, 국민위 간절한 배움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수 없는 빈약한 교육시설과 재정, 인재난이 우리 민족의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가 세계경제에서 중진 공업국의 위치에 올라섰으며, 절대적인 빈곤은 이미 해결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 민족 사이에 어두운 과거를 초래했던 근본 원인인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다.
이러한 민족사의 고통과 질곡을 극복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학교법인 호심학원 산하 광주대학교가 설립되었다. 본교 창설정신중에서 "무지와 질병, 빈곤과 타락된 사회윤리 속에서 허덕이는 동포를 하루속히 구출하여 조국의 통일과 부강을 이룰수 있는 인재를 양적할 목적으로"라고 표현된 부분은 분단되고 분열된 민족현실과 절망적인 사회현실의 극복의지에서 광주대학교가 설립되었음을 나타내고있다.
본교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민족분단 하에서 황폐화된 민족역량 을 교육에 의해 부흥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인재 양성 이야말로 광주대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이다. 진리와 양심에 입각하여 굴절된 민족사를 바로잡고 민족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창조적인 젊은일꾼의 양성이 광주대학교의 창설정신인 것이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예로부터 서원이나 서당, 향교등이 지방에서서 인재를 양성할 때도 터를 잡을 때마다 유림이 모여 논의하고 좋은 터에 양택지를 잡아 건립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좋은 기원을 받을 수 있는 양택을 건립한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양택을 지을때 고려할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특히 대규모의 건축물을 배치할 때도 여간 고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황궁의 터를 잡거나 왕릉의 터를 정할 때는 당대의 학자들이 몰려 갑론을박을 하였다.
대학교의 터도 마찬가지다. 광주대학교의 터도 그러한 기준에 의해 구비되고 마련되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학교의 터가 어떠한 지기를 지닌 곳인가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일반벅인 양택삼요는 물론이고 양기풍수의 이론에 의해 터를 잡고 8방위를 분활하여 이치에 어울리게 건물을 배치하였을 것이다.
광주대학교를 가고자 해서 간 것은 아니다. 화순에서 운주사를 둘러보고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가던중 우연히 보았을 뿐이다. 멀리서 보니 대단히 높은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언뜻보니 백화점의 모양같기도 하고 디즈니램드의 모양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건물은 높았고 사방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유희적이기도 하다.
대학교 건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터가 좋다고 해도 부수적인 요건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가상이다. 가상은 문주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가옥의 형태와 지붕의 형태도 고려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수맥은 하늘 높은 곳에서도 영향을 받지만 일반적으로 지기는 5층 정도가 한계다. 따라서 학문을 익히는 건물은 지기의 영향이 미치는 5층 이내가 가장 적당하다.
무엇보다 눈에 뜨이는 것은 지붕의 형태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건물의 지붕은 방정한 것이 가장 좋다. 지나치게 난잡한 것은 좋지 않다. 특히 지붕은 하늘의 기가 머무는 곳이니 단정해야 한다.
광주대학교의 건물 지붕은 그야말로 전쟁터의 성벽을 연상하게 한다. 지나치에 어지럽다. 이 건물을 설계한 설계자는 심미적인 점을 많이 고려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풍수적으로 보면 학생들의 이상을 좀먹고 사고를 불안전하게 하는 건물이다.
눈에 거슬리는 지나치게 뾰족한 첨탑형식의 구조물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충으로 이 학교에서 근무하거나 공부하는 학생들의 피해로 다가온다. 예로부터 성벽 모양의 지붕이나 지나치게 날카로운 구조물은 거주자의 피해를 예측하게 한다. 가능한 빠른시일안에 지붕과 건물의 예각을 없애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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