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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윤웅렬 별서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7-12-27 조회수 551
첨부파일
내용
* 찾아가기

종로구 부암동 348번지


* 관산주안점

1. 주산 확인(바위로 이루어진 일자문성-극귀사로 제왕사로 불리며 왕까지 탄생시킨다 )

2. 주산에서 혈장에 이르는 용을 파악하라.

3. 양택의 구조(문,주,조를 통한 동서사택 구분)와 양택삼요를 파악한다.

4. 교쇄를 파악한다. -- 청룡과 백호가 환포하고 있다.

5. 안산을 파악(일자문성)

6. 어떤 인물이 살았는가? 출생하였는가


* 윤웅렬

윤웅렬 (尹雄烈 1840∼1911)은 개화파라는 이름과 친일이라는 이름의 경계지점에 있는 듯 보이지만 친일행적이 뚜렷하다
그는 조선 말기 문신으로 본관은 해평(海平). 충청남도 아산(牙山) 출생이다. 1856년 무과에 급제하여 1861년 충청감영중군 겸 공주중군이 되었고, 함경북도 북청 병마우후토포사(兵馬虞侯討捕使)를 거쳐 남양부사 등을 지냈다. 1880년 별군관으로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고, 1881년 별기군이 신설되자 좌부령관에 임명되어 별기군 운영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에게 군민들이 일본공관을 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했고, 그 뒤 군란이 점점 확대되어 친일인사들의 집을 공격하자 일본으로 피했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개화당이 구성되자 내각의 형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정변이 실패로 끝나 유배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개화파가 다시 집권했을 때 풀려나 경무사·군부대신 등을 지냈다. 1896년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에 가담, 실패한 뒤 상하이[上海(상해)]로 망명했다가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참장군부협판이 되었고, 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1910년 국권피탈 후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윤웅렬은 윤보선 대통령의 조부인 윤영렬의 형이다. 또한 개화기의 인물인 윤치효의 부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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