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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기

제목 정숭조 묘
작성자 박상근 등록일 2008-01-17 조회수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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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찾아가기

시흥시 광석동



* 관산주안점

정숭조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효숙(孝淑), 호는 삼성재(三省齋),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영의정 정인지(鄭麟趾)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판한성부사 이휴(李携)의 딸이다. 그는 매우 뛰어난 사람으로 역사게 길이 남을만 하였지만 부친인 정인지의 명성에 가린 점이 적지 않다.

17세에 음보(蔭補), 24세에 절충장군 겸 지사간원사, 26세에 첨지중추부사, 2년 뒤에 공조참판, 30세에 좌리공신 4등으로 하남군(河南君)에 봉해졌다. 33세 형조참판, 36세 한성부 관륜, 47세에 하남부원군, 51세에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59세 승정대부,

묘역에 올라보면 두개의 봉분 모두 뛰어난 명당에 자리하고 있으며 재혈과 분금 또한 절묘하다.

이기학을 연구하는 풍수사들이 무어라고 주장할지 알수 없으나 이 묘는 전형적인 형기에 따른 묘역이다. 전순의 중심을 향해 좌향을 정하는 이치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뛰어난 묘역은 좌향을 잡을 때 이기가 아닌 형기를 이용하는데 이는 참으로 묘한 것이다.

이기학이야말로 좌향에 깊이를 가진 학문으로 알려졌는데 대부분 명당으로 소문난 묘역을 보면 이기학에 근거한 좌향론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이기학으로 해석하려고 애를 쓰는 후학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숭조의 묘는 외형적으로 이미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우선 멋진 혈상을 지니고 있다. 형기에서는 혈상을 지니지 못하면 혈이 아니라고 단정짓는다. 혈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혈이 맺히기 어려우며 찾기도 어렵다. 또한 초락용이나 강룡의 경우 혈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이는 기감이 뛰어나지 않으면 찾기는 불가능하다.

이와같은 근거에 의거하면 전문용어인 용수(聳秀), 용출(聳出), 돌출(突出), 혈상(穴象)라는 말이 어떤 목적으로, 혹은 어떤 이유로 쓰였는지 알 수 있다. 만약 혈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혈이 아니라는 이론이야 말로 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운 개개인의 주장을 불식시키고 아집을 막아주는 것이다. 즉 아무리 자신의 주장이 옳다 하여도 기본 혈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좌향을 주장하거나 느낌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혈의 기본혈상은 와겸유돌로 구별된다. 이중에서 겸혈은 무척 보기 힘든 귀한 혈이다. 겸혈은 유혈에서 선익사가 극도로 발달하여 이루어진 혈로 마치 임산부가 누워있는 모습을 발치에서 본 것과 같아 개각(開脚)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혈체(穴體)에서 두줄기의 지각이 나와 앞을 오무려 주는 형상이다. 두개의 지각중 하나는 짧아야 한다.

묘역에 올라 살펴보면 상부에 자리한 부인의 묘역은 유혈이다. 그런데 정숭조의 묘역은 특이성이 있다. 언뜻 보면 유혈로 보이지만 우선에서 발달한 지각이 발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좌선에서 발달한 지각이 무려 300여미터나 이어나가며 개각을 이루니 전형적인 겸혈의 혈상이다.

귀한 혈을 본 것도 잠시, 고개를 들어보면 교쇄가 뛰어남을 볼 수 있다. 청룡자락 너머에서 밀려온 내수는 백호방으로 환류하여 백호 너머에서 흘러온 내수와 합쳐져 다시 좌출하여 파구를 이룬다. 산이 첩첩으로 싸여 수구를 볼 수 없으니 이 또한 귀한 수격이다.

안산은 약간 높은 듯하나 그다지 표나지 않는다. 그러나 안산에 나타나는 두개의 골짜기는 잘못 인식하면 충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명당에서는 불리한 사격이 가첨되어 좋은 사격이 되듯 내당이 넓고 물이 있으며 지각이 막아주면 충이 아니다. 그리고 넓은 골은 충이 아니다.

주변은 온통 금형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재판(財版)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그러나 겸혈은 이미 극한 귀사격이다. 그리고 당판의 작은 돌은 역시 귀사격에 속한다. 당판이 크니 재물이 있으며. 이미 좌향의 삼재에 따라 부귀손이 함께 한다. 그러나 안산 너머로 보이는 극귀사는 다른 모든 극귀사를 뛰어넘는다.

부인의 묘역에서 보면 완연한 극귀사이지만 정숭조의 묘역애서 보면 규봉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극귀사를 이루고 있는 일자문성의 힘은 극귀사이기 때문에 규봉사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수 있다.

관산을 마치고 내려오다 문득 돌아보니 주산이 천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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