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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 군자동
* 관산 주안점
주차장에 다다르면 크게 3채의 당우를 볼 수 있다. 금형산을 주산으로 삼아 배산임수의 터에 무량수전을 세웠다. 그리고 양 옆으로 시멘트를 이용한 당우를 세웠는데 같은 구조다. 무량수전 좌측에 삼성각이 있다.
무량수전을 마주하는 곳은 돌이 깔린 넓은 광장이며 지하는 납골 시설이다. 건평 1천6백여평에 지하 2층 규모로 1999년말 최종 회향되었다. 총 2만5천기의 납골을 안치할 수 있는 극락영묘전은 가족단, 개인단, 부부단 등으로 조성되며 장례예식장도 들어섰다. 특히 영각사는 재일, 재미동포와 이북5도민 등 실향민들을 위해 위령탑과 망향탑도 건립하는 복안도 갖고 있다.
현법스님은 납골당 건립과 관련 “그동안 납골당이 혐오시설로 치부돼 왔다”고 지적하고 “혐오시설로 인식되지 않게 최첨단시설을 갖춰 편안히 참배하고 휴식할 수 있게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영각사는 ‘부처님 품안처럼 포근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원칙아래 생활공간과 다름없는 쾌적한 분위기의 휴게실, 식당, 산책로, 주차장 등 최적의 편의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현법스님의 이 같은 납골문화에 대한 지론은 외국의 납골당을 답사하면서 굳어진 것. 스님은 1991년부터 유럽, 미주, 동남아 등의 납골당 시설과 장의문화에 대한 답사를 실시했다.
스님은 “외국의 납골당은 신앙체제에 따라 독특한 장의문화가 형성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의 장묘문화는 불교와 유교가 혼합돼 있음을 답사를 통해 알게 됐다”며 “불교의 장의문화 체계를 바로 세우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 불교의 자립적 재정기반 마련 등을 위해 납골당 불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각사는 영묘전 불사를 계기로 불교 장의문화의 새장을 연다는 복안이다. 이를위해 백중, 지장재일, 한식 등 연중무휴의 영가천도기도를 봉행하며 장례에 대한 모든 절차와 화장, 운구의식을 집전하게 된다.
교쇄가 이루어져 바람이 새어들 틈이 없으니 사찰의 양택지로는 그만이다. 다만 약간 좁다는 약점이 있으나 대규모 사찰을 지을 것이 아니라면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납골시설이 자리한 곳은 계곡에 속하는 지점에 지붕을 덧씌운 형태가 된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도 애초 자연이 지니고 있던 기운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재의 납골당은 계곡에 해당하는 곳이다.
비록 불에 태운 인간의 뼈는 소멸되어 후손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하여도 근본적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모시고자 하는 생각은 바뀌지 말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부모의 유골은 물론이고 화장한 재라고 할지라도 양명한 곳에 모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계곡에 해당하고 산자락이 기울어져 물이 고이는 장소에 자리한 납골시설은 그다지 좋게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국이 좁고 주밀하기는 해도 교쇄가 뛰어나 절터로는 가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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