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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 지세마을
이백강은 조선 초기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영의정 거이(居易)의 아들이며 태조의 부마 저(佇)의 동생이다. 1397년(태조 6) 음보로 별장이 되었으며, 1399년(정종 1) 감찰이 되어 이방원(李芳遠;太宗)의 맏딸인 정순공주(貞順公主)와 결혼, 청평위(淸平尉)가 되었고, 병조좌랑과 형조좌랑을 지냈다.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워 우장군을 거쳐 대장군에 올랐다. 태종이 즉위하자 숭정대부(崇政大夫) 청평군(淸平君)에 봉해졌다가, 1404년(태종 4) 아버지가 모반을 꾀한다 하여 폐서인되어 동성(東城)에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풀려났다. 1418년(태종 18)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오르고 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에 봉해졌다. 1422년 진하사로 명(明)나라에 다녀온 뒤에 궤장을 하사받았다.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이계린(1401~1455)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경(子耕)이고 본관은 한산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손자로, 지중추원사 종선(種善)의 아들이며 영중추부사 계전(季甸)의 형이다.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균(鈞)의 딸이다. 태종의 장녀 정순공주(貞順公主)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돈녕부판관, 동부승지, 형조참판, 경기도관찰사, 호조참판, 경상도관찰사,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세조의 왕위찬탈에 협력한 아우 계전과 함께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녹훈되어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다. 1455년에는 좌찬성을 역임했다. 시호는 공무(恭武)이다.
이백강과 이계린의 묘역에서 눈여겨 볼 것은 형상이다. 물론 물형론을 의미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백강과 이계린의 묘역에서 좌향을 따지면 용맥이 길게 회룡하여 중조산을 바라보는 형국이니 전형적인 회룡고조(回龍顧祖)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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