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읍에서 7번 도로를 이용해 내가면 외포리 방향으로 달리다 나래현고개를 넘는다. 이 고개 우측에서 보면 미군의 레이다 기지가 보이는 산이 고려산이고 그 능선 자락 하나가 길게 뻗어 바다 방향으로 향하는데 이 산이 낙조봉이다. 이 낙조봉이 있는 마을이 고천리다.
고천리 길 우측으로 적석사를 알리는 간판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대략 200여미터를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은 마을과 적석사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대략 2킬로미터 지점에 고천리 고인돌이 있음을 알리는 간판이 나타난다. 대략 1킬로를 가자 산길이 나타난다. 차가 갈 수는 있지만 조금 의심스럽다. 이곳에서 200여미터 이상을 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길이 갈라진다. 다시 100여미터를 오르면 집이 한채 나오고 대략 500미터 지점에 고인돌군이 있음을 알린다.
길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지만 일반 자가용은 어렵다. 200미터라 해도 제법 먼 거리다. 산길은 실거리가 아니고 직선거리에 고도를 감안하지 않기 때문에 실거리는 수배의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아무튼 등산로를 따라 직선거리로 500여미터를 가면 고천리 고인돌군을 만날 수 있다. 주위는 온통 밤나무 과수원이다.
고천리 고인돌은 고려산 정상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 350미터 지점 내려가면 고천리 일원 3개군 18기의 고인돌이 나뉘어 군집해있다. 가군은 고려산 정산(레이다기지)에서 낙조봉으로 이어지는 해발 300~350미터 능선상에 고인돌은 혈구산 정상을 바라보고 3기가 조성되어 있다. 비교적 환형으로 보존되어있는 고인돌 1기는 탁자식으로 지석의 형태는 ㅍ자형이다. 관산을 위해 찾아간 곳이 바로 이 가군이다.
나군은 11기로 고천리 지석묘군 가운데 가장 높은 산 능선상의 편평한 대지에 형성되어 있다. 10기는 군집을 이루어 분포하나 약 20미터 정도 떨어져서 덮개돌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탁자식 지석묘가 1기 존재한다. 석실의 방향은 능선의 방향과 일치한 동-서 장축이며 대부분의 고인돌이 덮개돌이 유실되거나 지석의 일부가 유실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군은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고인돌로 6기다. 우리나라 고인돌 분포 평균 고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곳의 탁자식 고인돌 무덤 1기 외의 고인돌 무덤은 대체로 인위적인 훼손보다는 자연적인 붕괴가 이루어져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인근 능선상에 고인돌 석재를 채석한 흔적이 있어 고인돌 축조과정을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고인돌은 대부분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고천리의 고인돌은 정확하게 8부에 해당하는 능선을 타고 있다. 능선이 아닌곳이라 해도 기맥이 흐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이 시대의 사람들도 기맥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의심이 가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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