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공 선사 고려 불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지공은 인도의 마가다국(摩竭提國) 출신입니다. 그는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원나라 수도 연경을 거쳐 충숙왕 13년(1326년)에 고려에 들어와 ‘환생한 부처’로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3년 가까이 머물었다. 지공은 1328년 연경으로 돌아간 뒤에는 고려인들이 세운 법원사(法源寺)에 머물렀으며, 나옹과 백운, 무학 등이 다투어 원나라로 건너가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지공은 1361년 11월 겨울 입적하는데,1368년 원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의 혼란 속에 그의 유골을 네 사람의 제자가 나누었고.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이 고려로 가져온 유골이 회암사와 장단 화장사, 묘향산 안심사에 나뉘어 안치되었다.
* 나옹 화상 나옹선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본명은 혜근이다. 오대산 상두암에 머물렀고, 공민왕에게 설법을 하였다. 회암사의 주지가 된 후 절을 중창하였고, 우왕 2년(1376)에 입적하였다.
* 무학 대사 회암사의 주지이기도 했던 무학대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 이성계의 꿈을 풀이하여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이야기와 한양천도와 관련된 설화가 유명하다. 고려 공민왕 때 연경에 가서 지공에게 법을 구한 뒤 회암사에서 머물렀다고 하는 무학의 묘탑은 무학대사묘비의 기록으로 미루어 1407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지공선사 나옹화상 무학대사의 부도는 기맥을 따라 계단식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놀라우리 만큼 정확하게 혈을 기초로 삼아 부도를 세웠다. 단단한 지세를 토대로한 교과서적인 풍수학상의 법칙을 잘 보여준다.
* 애교머리 지공선사 부도 전면에 놓여있는 귀부(龜扶) 머리통을 자세히 보면 한 동안 유행했던 여자 헤어스타일인 애교머리가 조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먼 예날 선조들의 선경지명에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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