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6월 지방관산(진주, 승주, 해남)
1. 용문사(남해) 용문사는 미륵이 탄생하여 맨처음 몸을 씻었다는 용소마을 위쪽의 호구산 계곡에 있다.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를 짓고,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옮겼다 한다.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며 남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2. 금둔사(낙안) 삼층석탑 (보물 제945호) 이 탑은 2층의 밑단부분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통일신라(9세기) 석탑이다. 3층으로 된 이 탑의 밑단부분과 첫 번째 탑신부에는 각 면에 돋을새김의 팔부신장상(八部神將像)을 부조 하였다. 탑 상층부는 모두 없어졌다.
금둔사 석불비상(石佛碑像 : 보물제946호) 삼층석탑과 나란히 서 있는 이 석불입상은 비석 모양의 형식을 한 특이한 불상이다. 네모꼴의 돌에 돋을새김(양각)으로 불입상을 새겼고, 석불 머리 위에는 석탑에서 볼 수 있는 지붕돌을 얹어 놓았다. 독특한 비상형식(碑像形式)의 석불입상은 약사여래불이다.
3. 송광사(승주) 百聞而不如一見!!!
4. 자웅석(진주)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2호 자웅(雌雄)을 상징하는 한쌍의 성기형상(性器形象)암석으로 운돌 혹은 명석(鳴石) 이라고도 한다. 숫돌은 남자 성기모양 이고 암돌은 여자가 족두리를 쓴 형태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高慮) 공민왕(恭愍王)때 여진(女眞) 및 거란의 침입을 대비하여 『일설에는 고려(高慮) 고종(高宗)18년 몽고(蒙古)의 침입을 대비한 것이라고 한다.』 진주성(晋州城)을 수축할 때에 부역에 동원되었던 광제암(廣濟庵)의 승려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급히 걸어오는 한 쌍의 돌을 만나서, "무영석물(無靈石物)이 어디가느냐?" 하고 물으니까 돌들이 "진주성 부역에 고생하는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성돌이 되고자 간다." 답하여서 "이미 성을 다 쌓았다."고 하자 돌이 크게 울며 전신에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섰다. 그래서 이 자웅석을 운돌이라 이름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소식을 들은 중국(中國)명사 두사충(杜思忠)은 "크나큰 그 돌/ 낭랑한 그 울음이여 /그 이름의 크고 장함/천만년 빛나리 <뢰뢰유석(磊磊鍮石) 낭랑 기명(琅琅其鳴) 기명굉대(其名宏大) 어천만령(御天萬齡)>" 이라는 자웅석찬(雌雄石讚) 의 시 를 보냈다고 한다. (진주시청 자료에서 퍼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