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11월 지방관산(울산방면)
1.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울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6호. 산 정상에서부터 마애여래상 뒤쪽으로 왕하게 구비쳐 내려오는 방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에 일광(日光), 월광보살(月光菩薩)이 협시(脇侍)하고 있는 약사삼존불(藥師三尊佛)을 높게 돋을새김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입니다. 옛날에는 이 암석에 집을 지어 석불이 방안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이 바위를 방바위라고 합니다.
2. 월성 최씨묘 경주 최부자의 위선사(爲先事)를 일목요연하고 확연하게 보여주는 묘상입니다. 묘의 주인은 최진립이며 내노라하는 풍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여기서부터 음덕의 발복이 시작되었다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와같이 훌륭하고 멋진 혈상을 찾아서 소유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 풍수사들은 그 윗대 선조들의 활약상도 머릿속으로 그려낼 줄 알아야하는 능력은 구비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금형체 주산의 위엄과 당판 덩어리의 크기는 물론이거니와 주위 사격들은(물론 금형체) 두말할나위없이 훌륭하고 깨끗하고 아름답지요... 명당 예찬은 이러한 곳에서 하는 것이랍니다. 百聞而不如一見입니다..... 경주 최씨 가문을 다룬 드라마 명가(明家)가 KBS에서 방영된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3. 김취려(金就礪) 장군묘 본관이 언양(彦陽)이고. ?∼1234(고종 21). 고려 후기의 무신입니다. 그는 많은 공을 세워 추밀원사 병부상서 판삼사사(樞密院使兵部尙書判三司事) 참지정사 판호부사(參知政事判戶部事) 수태위 중서시랑평장사 판병부사(守太尉中書侍郎平章事判兵部事)가 되었으며 그뒤 시중에 제수되었습니다. 사람됨이 정직, 검약하였으며 많은 공을 세웠으나 스스로 내세우지 않았다 합니다. 고종묘정(高宗廟庭)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위열(威烈)입니다. 장군묘를 두루 살펴보노라면, 이러한 충직함이 사후에도 하늘이 그를 도와, 이 나라가 커다란 위기에 처했을때 그 위기에서 구해낼 위인이 배출 될 수 있는 역량의 혈상을 그에게 내려준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갑니다. 당판의 강세가 압도하는 힘을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분출되는 기운이 엄청납니다......
4. 천전리 각석 국보 147호 입니다. 우리들의 머나 먼 조상님들도 풍수학에는 눈이 밝으셨나 봅니다. 그 먼 옛날, 풍수학이라고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풍수라는 개념도 없었던 그러한 시절이었는데도 어쩌면 이렇게도 절묘한 위치에다 또렷한 흔적을 조성 해 놓으셨는지 감탄사만 연실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토종격인 자생풍수의 실례와 그 증거가 바로 이 각석이지요..... 흐르는 강물이 휘돌아가는 내굽이안의 지형은 수천년의 세월이 흘러가도 원형이 변치 않는다는 위대한 발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마치 단단한 암석이 전순으로 떠바치고있는 혈상은 수천년이 지나도 제 모습을 잃지 않는다는 풍수학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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